A Room of One's Own

자기 고유의 리듬 본문

Private

자기 고유의 리듬

Jeongjoo Lee 2014. 6. 4. 19:25

자기 고유의 리듬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학문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자 교접이며 또한 완성이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도 단 한 문장의 깊이를 읽어낼 수 없다면, 바로 그 한 문장 앞에 서서 숨을 고르며 기꺼이 머무를 수 없다면, 철학적으로는 이미 공허한 것이다. 다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문장을 음미하지 않고 단순히 암기해버리는 것은 백과사전이나 하는 짓이며 컴퓨터가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 성취가, 고작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것이라면, 우리의 지성은 저것들에 비해 무엇을 뽐낼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이 탁월한 이유는 주어진 문장을 창조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고 무수한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전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눈으로 읽는 것도, 내용을 암기하는 것도, 나아가 단순히 사조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슴으로 느끼고, 이성으로 물으며, 끝끝내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한다. 


고유의 리듬을 잃지 않는 태도는 이러한 자기완성으로서의 철학을 가능케 한다. 타인을 의식한 경쟁적 학습은 결국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채워 넣는 데 급급할 뿐 단 하나의 문장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러한 이는 '철학 선생'이 될 수 있을지언정 '철학자'는 될 수 없다. 진정한 철학자는 자기 고유의 리듬 속에서,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자신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물론,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 리듬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이들을 이른바 '천재'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이도 결국 자신의 삶을 기꺼이 변화시킬 수 없다면, '똑똑한 학자'일 뿐 '철학자'는 아닌 것이다. 


남들보다 곱절은 늦은 리듬이어도 좋다. 그 리듬에 맞춰 배우고 익힌 것을 자신의 삶에 온전히 투영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삶이 전적으로 그것과 일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가장 탁월한 철학자이다.

'Priva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판 문맹  (0) 2014.06.04
세네카의 위안  (0) 2014.06.04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  (0) 2014.06.04
정치 참여에 관한 플라톤의 유명 구절의 출처와 맥락 보기  (0) 2014.06.04
투표하자  (0) 2014.06.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