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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위안

Jeongjoo Lee 2014. 6. 4. 19:29

세네카의 죽음La mort de Sénèque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작


어설픈 희망과 위안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더는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자신을 내몰 수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근심에 쌓인 이에게 "잘 될 거야,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내뱉는 말은 때때로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어쨌든 해내야 해', '해내는 게 좋은 거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곤 하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현자의 격언도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거나 한낱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이를 사로잡고 있는 시간은 아직 미처 지나가지 않은 '바로 지금'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저 말은 현자에게 있어 진실일 뿐, 고통받는 이에게는 언제나 거짓이다. - 자기계발서가 고약한 것은 이런 식의 거짓을 위로랍시고 떠들고선 부와 명성을 얻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의사가 되어 멀쩡한 사람들을 치료하길 좋아한다. 


세네카는 현명했다. 그는 친구 루킬리우스가 처한 곤란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위로했다.


"그대가 이번 소송에서 패할 경우, 기껏 유배당하거나 교도소에 갇히는 것뿐 외에 달리 뭐가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면 많은 가난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면 그뿐이지. 유배당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면 유배당한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여기면 되지 않겠는가. 또 감옥에 갇힐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어때? 지금은 굴레에서 자유로운가?"


또한 아들 메틸리우스의 죽음으로 비탄에 젖은 마르시아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편지를 전했다.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세네카의 글들은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그 답답함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비로소 절망에 순응할 한 줌의 용기를 발견한다. 절망에 순응한다는 것. 이것은 '도약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겠다는 적극적인 삶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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