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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욕구

Jeongjoo Lee 2016. 2. 7. 21:43

"한 단계씩 올라설 때마다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도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학부생 때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계속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여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려 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양한 어려움이 피부로 와 닿아 순간순간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현실이라고 하는 문제들, 특히 '돈'은 학문을 향한 열정마저 위협할 만큼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용기를 내보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되는 것 같아 적잖이 외롭기도 합니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자기소개 글이다. 뭐 이리 감상적인 글을 썼었나 싶지만... 당시 돈이 없어서 여러모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공부하는 많은 젊은 학도들이 다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을 테다. 공부하는 것 자체도 너무 어렵지만 그걸 바라보는 주변의 조급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어려움은 더욱 크고, 때로는 돈 앞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열심히 분투하고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에 눈물을 훔쳐야 할 때도 잦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더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기보다 공부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무언가 중요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분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표현이지만, 인간에게는 '앎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삶의 다른 욕구들에 우선해서 이 욕구를 추구하고, 이 욕구에 따른 삶을 구성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앎'은 모든 지식을 의미하지 않기에 '욕구' 또한 모든 지식을 향한 무분별한 욕구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앎과 [앎의] 욕구는 오직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면서, 감각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앎에 머무르지 않는 앎이자 바로 그러한 앎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다.[각주:1] 따라서 조금 야속하게 말하자면, '나는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야!' 또는 '나는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해서 방금 말한 앎과 [그] 앎에 대한 욕구와 관련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옆길로 빠지게 한 이유는 현실의 문제를 견뎌내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앎과 욕구를 바로잡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왜 철학 공부를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철학을 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답해왔지만, 사실 이 표현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무책임한 해명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단지 즐겁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할 수는 없다. 지적 호기심과 쾌락은 공부하게끔 하는 강한 추동임이 틀림없지만, '무엇'에 관한 것인지가 결여되어 있는 한, 공허하거나, 어떤 의미에선 거짓된 또는 가장된 호기심과 즐거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 물어본 질문에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투영하는 번거로움과 난감함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왜 철학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철학을 통해 무엇을 알고 싶고, 어떠한 욕구에 사로잡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진 출처: Oxford Scholarship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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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성일: 2015.1.21

마지막 수정일: 2016.2.7





  1. 아리스토텔레스의 '앎의 욕구'와 관련한 원문은 Metaphysics 1.1.980a21-7. 관련 연구 문헌은 Jonathan Lear, 《Aristotle: the Desire to Understand》, Cambridge, 1988, pp. 1-14., Giuseppe Cambiano, "The Desire to Know Metaphysics A 1", 《Aristotle's Metaphysics Alpha: Symposium Aristotelicum》, Oxford, 2012, pp. 1-42.를 참고할 것. *블로그 각주에는 '기울임'을 적용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로 표기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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