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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of One's Own
@ 얼마 전 방영된 Mnet의 에서는 노골적으로 계층 피라미드 심볼을 적용하여 참가자의 순위와 등급을 매긴다. 뭐든 경쟁하며 살아온 우리가 누군가를 이기지 않고 승리하는 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1명의 연습생을 한데 모아 경쟁시키고, 대형 스크린에 1위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공개하고, A부터 F까지 등급이 매겨진 옷을 입히고, 이 모든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를 선발하는 게임에서 우리는 과연 함께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경쟁이 자기 발전에 큰 동력이 된다는 점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너무 많은 보상을 받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필요 이상의 벌을 받는다는 점이다. 승자 독식 구조에서, 승리한 사람은 [어쩌면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많은 특권을 삶의 ..
세상의 요란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까, 아니면 홀로 아득히 침잠해야 할까? 자기 세계에 빠져들지 못한 배회는 세상과의 어울림이기보다 나태하고, 낯선, 그러나 이내 익숙한보잘것없이 움츠린 자신을 마주 보게 한다. 어느 사내의 독백처럼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밉고,돌아서 생각하자니 가엾은, 나.
맥(Mac)에서는 한컴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데 많은 불편함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글 맞춤법 검사 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대안을 찾다가 정착한 것이 바로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사이트. ‘대치어’와 ‘도움말’을 통해 자주 틀리는 문법적 오류를 매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사이트- 맥(Mac)에서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활용하는 법 그런데 오늘, 우연히 검사기를 실행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교정을 받았다. ‘김치녀’의 대치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 대안으로 ‘한국 여성우월주의자’, ‘이기적 한국 여자’, 심지어 ‘한국 여자’나 ‘한국 여성 운동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다. 단어..
"한 단계씩 올라설 때마다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도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학부생 때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계속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여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려 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양한 어려움이 피부로 와 닿아 순간순간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현실이라고 하는 문제들, 특히 '돈'은 학문을 향한 열정마저 위협할 만큼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용기를 내보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되는 것 같아 적잖이 외롭기도 합니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자기소개 글이다. 뭐 이리 감상적인 글을 썼었나 싶지만... 당시 돈이 없어서 여러모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공부하는 많은 젊은 학도들이 다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성장..
(레드 존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의 메인 플롯이었던 레드존 이야기가 시즌 6 에피소드 8을 끝으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 연쇄 살인마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꺼림칙하지만 그간 ‘레드 존(Red John)’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모습은 소름끼치도록 잔인하지만 젠틀하고, 순수하지만 한편으론 교활한, 말하자면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캐릭터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대립하지만 사실상 같은 성격(personality)을 지닌 ‘제인(Jane)’과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묘미 중 하나였는데...결과적으로 레드 존의 B급 죽음으로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레드 존 이야기 자체가 점점 B급스러워졌던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 잦아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매일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은 마치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죄를 짓는 것만 같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내가 사랑한 것들, 지켜오고, 성취해온 모든 것이 마치 나 때문에 으스러져 버릴 것 같은 이 불안감은 점점 내 삶의 온기를 빼앗아 간다.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단 하나도 만족스러운 구석 없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왜 더 노력하지 않을까 왜 더 집중하지 않을까.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자신을 채찍질해보지만, 지금은 그저 아플 뿐이다. 점점 더 많은 요구와 책임이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나와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직면..
청소년 인문학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최종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고전 읽기’였다. 청소년 감성에 맞는 세련된 강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톨레레게 역시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세미나에 할애해 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시청각 자료 및 놀이 활동을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식 수업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인문학은 텍스트 읽기를 통해 비로소 시작되고,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추방당한 텍스트 읽기를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수업의 중심으로 다시금 가져다 놓고자 하는 시도는 인문학의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작은 책임을..
물리적 환경에서 배양된 도덕성이 빠르게 변화하는 웹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오히려 웹 환경에서 자라난 온갖 종류의 오류, 비하, 혐오가 사회가 지금껏 쌓아온 신뢰와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김치녀'로 대변되는 여성혐오는 이러한 흐름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야만적인 사례다. 섬뜩한 건, 아래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것조차 언제부터인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이트 바로 가기: http://kimchi-woman.blogspot.kr
교사가 되겠다는 열망을 쫓는 예비 교사들은 많은데 정작 청소년의 행복한 삶과 복지에 관심을 두는 예비 교사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참된 교사’, ‘참된 교육’을 꿈꾸지만 많은 이들이 교사로서의 자기 모습에 관심을 둘 뿐 청소년들이 학교 안팎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에 고통받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훗날 교단에 서서 청소년을 변화시킬 자신의 모습에는 흠뻑 도취되어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때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안일하고 교만할 뿐 아니라 사실 매우 위선적이다.
교육현장에서 부쩍 청소년을 위한 철학수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철학이 무엇을 다루고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저 철학에 대한 일반적 경험만을 앞세워 ‘힐링’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전문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적 경험에 의존해 철학수업을 정의하고, 그 제한된 틀 안에서 철학의 효용성을 기대할 때, 철학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그저 소소한 자기 위안 내지는 생각함의 재치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철학수업의 일부이고, 그 나름대로 필요하고 유용한 철학교육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기획자가 바로 이곳에만 머무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것도 쉽게 가르쳐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고,..
세네카의 죽음La mort de Sénèque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작 어설픈 희망과 위안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더는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자신을 내몰 수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근심에 쌓인 이에게 "잘 될 거야,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내뱉는 말은 때때로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어쨌든 해내야 해', '해내는 게 좋은 거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곤 하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현자의 격언도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거나 한낱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이를 사로잡고 있는 시간은 아직 미처 지나가지 않은 '바로 지금'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저 말은 현자에게 있어 진실일 뿐, 고통받는 이에게..
자기 고유의 리듬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학문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자 교접이며 또한 완성이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도 단 한 문장의 깊이를 읽어낼 수 없다면, 바로 그 한 문장 앞에 서서 숨을 고르며 기꺼이 머무를 수 없다면, 철학적으로는 이미 공허한 것이다. 다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문장을 음미하지 않고 단순히 암기해버리는 것은 백과사전이나 하는 짓이며 컴퓨터가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 성취가, 고작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것이라면, 우리의 지성은 저것들에 비해 무엇을 뽐낼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이 탁월한 이유는 주어진 문장을 창조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고 무수한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다소 진부한 표현처럼 들렸겠지만 사실 희망을 품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두려움, 좌절, 고통 따위를 수없이 경험할뿐더러 넘어설 수 없는 벽의 존재와 맞닥뜨리는 것이 인간의 운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과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는다. 문제는 이러한 체념의 태도를 보이는 동안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자들의 기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면 세계는 긴장의 끈을 잃고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명백히, 누군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세계를 인위적으로 나쁘게 만든 일이다. 바꿔 ..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징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플라톤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구절이다. 투표를 독려할 때 종종 인용되는 위 구절은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해서 진위 여부가 의심스러운 구절이기도 하다. 가장 근접한 출처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Therefore good people won’t be willing to rule for the sake of either money or honor. They don't want to be paid wages op..
고작 투표권 한 장을 빼앗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고, 고작 투표권 한 장을 얻으려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땅 어느 곳에서는 고작 투표권 한 장이 없어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고작 투표권 한 장을 뺏으려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있다. 우리가 무관심 또는 혐오증을 이유로 내던져버리고 있는 저 종이 한 장에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의 피와 염원이 서려 있다.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적어도 최소한의 책임은 다하도록, 투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