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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의 대치어?

Jeongjoo Lee 2016. 2. 10. 19:26

맥(Mac)에서는 한컴의 <한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데 많은 불편함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글 맞춤법 검사 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대안을 찾다가 정착한 것이 바로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사이트. ‘대치어’와 ‘도움말’을 통해 자주 틀리는 문법적 오류를 매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사이트

- 맥(Mac)에서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활용하는 법


그런데 오늘, 우연히 검사기를 실행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교정을 받았다. 



‘김치녀’의 대치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 대안으로 ‘한국 여성우월주의자’, ‘이기적 한국 여자’, 심지어 ‘한국 여자’나 ‘한국 여성 운동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다.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래 염두에 둔 의미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검사기를 통해 대안을 제시해주려고 한 것뿐일 수 있겠지만, 이를 참작하더라도, 가치 중립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한국 여자’나 ‘한국 여성 운동가’가 제안된 대치어로서 적절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굳이 포함해야 했다면, 하다 못해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주의라도 덧붙여야 했던 것 아닐까?


얼마 전 온라인 옥스퍼드 사전(OxfordDictionaries.com) 내 ‘rabid’란 단어의 예문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rabid’의 용례를 보여주는 예시로 “rabid feminist”가 적혀 있었던 것. 옥스퍼드 사전 측은 블로그를 통해 예문을 선정하는 기준과 방법 등을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잘못을 인정했다.[각주:1]


"In the case of an example which has recently received much attention, of the phrase “rabid feminist” to exemplify the sense of rabid meaning ‘having or proceeding from an extreme or fanatical support of or belief in something’, the example is an accurate representation of the meaning of the word: rabid is used in this way to denigrate the noun it modifies, and the real-life sentence from which the example was taken involved someone denigrating a person described as being a feminist. However, it was a poorly chosen example in that the controversial and impolitic nature of the example distracted from the dictionary’s aim of describing and clarifying meaning. A more generic example, like “rabid extremist” or “rabid fan”, would also have been supported by evidence on our corpora, and would have illustrated the meaning of the word without those negative impacts."


언뜻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단어를 정의하고, 설명하고, 사용하는 일련의 언어적 활동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지적, 문화적, 나아가 도덕적 삶을 구성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졌던 것도, 로마 학자들이 라틴어의 가난함을 토로하면서 그리스어 번역에 매달리고 궁극적으로 라틴어를 살찌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던 것도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회의 품격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rabid feminist’를 ‘rabid’의 예문으로 적는 사전을 발견한 사회와 ‘김치녀’의 대치어를 ‘한국 여성 운동가’로 적는 한국어 검사기를 발견한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문명화된 반응을 보이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관찰이 될 듯싶다.


  1. 'rabid feminist' 논란과 관련해 읽어볼 만한 글로는 Emer O'Toole, "A dictionary entry citing ‘rabid feminist’ doesn’t just reflect prejudice, it reinforces it", The Guardian, 2016. 1. 26., URL = http://gu.com/p/4g62m/sbl.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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