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 of One's Own
교육현장에서 부쩍 청소년을 위한 철학수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철학이 무엇을 다루고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저 철학에 대한 일반적 경험만을 앞세워 ‘힐링’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전문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적 경험에 의존해 철학수업을 정의하고, 그 제한된 틀 안에서 철학의 효용성을 기대할 때, 철학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그저 소소한 자기 위안 내지는 생각함의 재치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철학수업의 일부이고, 그 나름대로 필요하고 유용한 철학교육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기획자가 바로 이곳에만 머무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것도 쉽게 가르쳐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고,..
세네카의 죽음La mort de Sénèque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작 어설픈 희망과 위안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더는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자신을 내몰 수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근심에 쌓인 이에게 "잘 될 거야,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내뱉는 말은 때때로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어쨌든 해내야 해', '해내는 게 좋은 거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곤 하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현자의 격언도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거나 한낱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이를 사로잡고 있는 시간은 아직 미처 지나가지 않은 '바로 지금'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저 말은 현자에게 있어 진실일 뿐, 고통받는 이에게..
자기 고유의 리듬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학문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자 교접이며 또한 완성이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도 단 한 문장의 깊이를 읽어낼 수 없다면, 바로 그 한 문장 앞에 서서 숨을 고르며 기꺼이 머무를 수 없다면, 철학적으로는 이미 공허한 것이다. 다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문장을 음미하지 않고 단순히 암기해버리는 것은 백과사전이나 하는 짓이며 컴퓨터가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 성취가, 고작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것이라면, 우리의 지성은 저것들에 비해 무엇을 뽐낼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이 탁월한 이유는 주어진 문장을 창조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고 무수한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다소 진부한 표현처럼 들렸겠지만 사실 희망을 품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두려움, 좌절, 고통 따위를 수없이 경험할뿐더러 넘어설 수 없는 벽의 존재와 맞닥뜨리는 것이 인간의 운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과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는다. 문제는 이러한 체념의 태도를 보이는 동안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자들의 기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면 세계는 긴장의 끈을 잃고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명백히, 누군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세계를 인위적으로 나쁘게 만든 일이다. 바꿔 ..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징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플라톤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구절이다. 투표를 독려할 때 종종 인용되는 위 구절은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해서 진위 여부가 의심스러운 구절이기도 하다. 가장 근접한 출처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Therefore good people won’t be willing to rule for the sake of either money or honor. They don't want to be paid wages op..